남유럽 세 국가의 민주주의로의 이행은 크게 나누어 협약에 의한 이행인 스페인과, 밑으로부터의 협력과 동원에 의한 이행인 포르투갈, 이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됩니다. 이러한 차이는 스페인의 반대세력이 과거로부터의 완전한 단절을 요구했지만 타협과 합의의 틀 안에서 갈등능력을 행사하였고 정권 내 지배세력들도 전략적 이유에서 이에 대해 양보적 자세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면 이들 두 국가에서의 구체적인 민주주의 이행 과정을 나누어 살펴도록 하겠습니다.
1. 스페인의 민주화
스페인에서 발생한 권위주의 통치로부터 민주주의로의 이행은 구정권과 급격한 단절이나 정권의 자기전환 과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치행위자들 간의 일련의 연합과 조정의 산물이었습니다. '협약에 의한 개혁과 협약에 의한 단절'은 바로 이런 상황을 표현한 용어입니다. 스페인 정권 이행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프랑코에 의해 수상으로 임명된 카레로 블랑코가 바스크 조국과 자유당 특공대에 의해 1973년 12월 20일 암살된 사건입니다. 오푸스 데이 기술관료들의 지지 아래 반대세력에 대한 억압정책을 폈던 카레로의 후임으로 임명된 카를로스 아리아스 나바로는 프랑크 정권의 사회적 기반을 재구축하려는 목적으로 개방정책을 새로 실시했습니다. 그러나 적극적이지 않았던 나바로의 개방정책은 프랑코 맹종세력들의 반대감정을 악화시켰고 반대세력 내의 온건한 분파들을 유인하는 데도 실패했습니다. 그러자 노동자총연합을 비롯한 좌파세력들은 개방정책으로 확대된 정치적 활동영역을 이용하여 정권에 대한 갈등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코 정권의 붕괴에는 지배연합의 분열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반경쟁적인 권위주의 정권이었던 프랑코 정권은 시민전쟁에서 승리했던 세력들 간의 연합에 기초하는 정권이었습니다. 유능한 가부장적 지배자로서의 프랑코는 정권 내의 여러 분파들에게 공직을 분배하는 복잡한 시스템을 고안하지만 정권분파들, 특히 1960년대 중반 이후 격심해진 오푸스 데이 기술관료와 필랑헤 관료 간의 갈등과 뒤이은 프랑코의 사망으로 그 균형은 붕괴되었습니다. 지배세력의 분할 및 고립전략에 맞서서 전국적인 대중동원과 시위를 전개한 반대세력은 나바로 정권을 위기에 빠트렸습니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후안 카를로스 국왕은 국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또 유럽국가들의 스페인 신군주제에 대한 수락을 얻어내기 위해서 전면적인 민주적 개혁을 시행합니다. 1976년 7월 국왕에 의해 새로인 수상으로 임명된 아돌포 수아레스는 반대세력이 요구하던 프랑코주의의 완전한 청산을 의미하는 '민주적 단절'의 내용에는 못 미치지만 기존의 제도와 권력의 범위 안에서 인민주권의 원칙과 민주적 정치체제의 수립을 수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노동자를 대표로 하는 반대세력의 시위와 경찰과의 유혈충돌, 구질서의 유지를 주장하는 프랑코 맹종세력의 저항 속에서 정치개혁법의 의회 및 국민투표에서의 통과와 정당의 합법화, 노동조합의 자유보장 등의 조치가 취해졌는데 이는 수아레스의 리더십에 기인한 것입니다. 한편 지역문제에 대해서도 중앙 정치권력의 분산화, 카탈로니아와 바스크 지역에 대한 자치권 부여가 이 지역 정치인들과의 힘든 협상 끝에 이루어졌습니다. 사회세력들 간의 타협과 동의는 제한된 군주제와 국가개입이 허용된 시장경제제도, 가톨릭교회와 군부의 특별한 지위 등을 골자로 한 신헌법 제정을 가능하게 했고 이는 1978년 12월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인준되었습니다. 1979년에는 사회세력들이 수용한 민주적 규칙에 따라 총선거가 실시되고 신정권이 출범하게 되는데 이는 민주주의 이행의 완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2. 포르투갈의 민주화
스페인의 협약에 의한 이행에 비해 포르투갈은 '단절과 공개적 갈등의 과정을 통한 이행'을 경험했습니다. 군부 쿠데타에 의해 권위주의 정권을 붕괴시킨 포르투갈의 군부운동 세력들은 스피놀라 장군을 의장으로 하는 구국위원회라 불리는 연합정권을 출범시켰습니다. 스피놀라는 군부 쿠데타의 충격을 진정시키고 개혁주의적 장교들과 구정권과 연계되었던 민간인들과의 새로운 연합의 결성을 시도했습니다.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한 선호와 더불어 스피놀라의 이러한 시도는 군부운동의 혁명적인 프로젝트와 명백히 대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대립은 결국 스피놀라의 제거와 보다 급진적인 장교들에 의한 정부의 구성을 초래했습니다. 고메스 장군을 새로운 정부의 수반으로 내세운 이들은 스피놀라가 주도한 쿠데타를 저지하고 급진화된 노동자와 무토지 농업 노동자들을 동원하여, 은행, 보험회사의 국유화 같은 급진적인 개혁을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1975년 여름에 이르러 급진적 개혁에 반대하는 포르투갈 북부와 중부지역의 보수적 농민과 소자산가들에 의한 대중봉기가 발생하였고 새롭게 조직된 정당들도 언론, 집회 자유의 보장과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가능한 대안적인 정치 모델을 요구했습니다. 이러한 반혁명세력들의 도전에 직면하여 좌파세력은 급속히 분열, 약화되었습니다. 군부 내 급진파와 모든 중요한 연합은 실패하였으며, 군부운동의 지도부는 여러 분파들도 분열되었습니다. 또한 서방국가들은 유럽자유무역협정의 산업개발기금 등과 같은 경제원조를 이용하여 포르투갈 국내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습니다. 새로 등장한 군 지도자들과 민간 정치인들은 각료위원회를 재구성하고 11월 25일에 발생한 군부 내 극좌파의 쿠데타를 진압함으로써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에아네스와 네베스가 이끄는 우파 군부세력은 군부 내 급진파들의 조직이었던 대륙작전사령부를 해체시키고 급진파들을 대량으로 숙청했습니다. 또한 혁명과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표방하는 신헌법이 제헌의회에서 제정되고 1976년 4월에는 신국가 체제의 헌법을 대체한 새로운 공화국의 헌법이 공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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