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쟁과 분쟁의 개념적 차이
전쟁은 인류 역사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있었고 탈냉전 이후에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전쟁은 둘 이상의 서로 대립하는 국가 또는 이에 준하는 집단 간에 군사력을 비롯한 각종 수단을 사용해서 일정 규모 이상의 사상자와 파괴를 불러일으키는 사건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분쟁은 전쟁보다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 용어로 사회구성원이나 집단 간에 기존의 균형이나 질서를 동요하고 어지럽히 행동을 말하며, 대립이나 투쟁 등을 포함합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대표적인 국제분쟁 및 전쟁으로 뽑히는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탈냉전 시기의 국제분쟁 - 팔레스타인 분쟁
팔레스타인은 유대인과 아랍인들 간에 끊임없이 갈등과 유혈사태가 발생한 지구촌의 대표적인 분쟁지역으로 꼽힙니다. 팔레스타인은 현재의 요르단, 이스라엘을 포함한 지중해의 동남부 지역에 걸쳐 있는 지역을 지칭합니다.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이기도 한 이 지역은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지점이어서 유사 이래 여러 세력의 각축장이 되어왔습니다. 특히 유대인과 아랍인 간의 갈등은 2천여 년에 걸친 오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니다. 기원전 15세기경에 유대인의 선조인 헤브라이인들이 아라비아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여 왕국을 이루고 번성했지만 그후 북부의 이스라엘 왕국과 남쪽의 유대 왕국으로 분열되어 멸망했습니다. 신바빌로니아에 강제로 끌려가 머문 이른바 '바빌론 유수'에서 풀려나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돌아온 헤브라이인들은 다시 로마제국에 의해 박해를 당하고 기원후 70년 이들은 다시 유럽 각지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7세기에 팔레스타인은 이슬람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유럽 각지에서 흩어져 각종 차별과 박해를 받던 유대인들은 19세기 말에 유대인의 국민국가를 건설함으로써 유대민족의 활로를 찾자는 사장이자 운동인 시오니즘을 내세웠습니다. 이에 따라 헤브라이어의 부활운동과 팔레스타인으로의 귀환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시오니즘과 더블어 영국의 이중외교 정책이 겹쳐지면서 팔레스타인은 분쟁이 본격화되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은 당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던 아랍인들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영국에게 협력하면 전후에 아랍국가의 독립을 보장한다는 일명 '후세인, 맥마흔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영국은 유대인이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던 미국의 참전을 끌어내려는 목적으로 '영국 정부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국가가 수립되는 것을 적극 지지한다.'는 일명, '벨푸어 선언'도 발표했습니다. 이에 아랍인들은 심한 배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1차 대전 후 팔레스타인은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게 되는데 당시에 유대인들의 이주가 늘어나면서 아랍인들과 충돌이 흔하게 발생했습니다. 영국의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1947년 2월 영국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포기 선언을 하고 이를 국제연합으로 이관했습니다. 이에 국제연합은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이 지역에 유대-아랍 연방국을 건설하는 방안과 아랍국과 유대국을 개별적으로 건설하는 두 가지 방안을 마련하여 표결을 통해 개별국가 건설 방안을 최종적으로 의결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의 북쪽지방과 갈리리 지방, 남쪽의 네게브 사막은 유대인 구역으로, 가가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을 포함한 나머지 구역은 아랍인 구역으로 분할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결정에 대해 아랍인들은 거세게 반발한데 비해 유대인들은 이를 즉시 수용했습니다. 그결과 1948냔 5월 14일 텔아비브에서 벤구리온 초대 수상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자 그날 밤 주변의 아랍국이 이집트와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등이 아스라엘에 침공하면서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했습니다. 1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 이스라엘은 영국이 위임통치하던 서부 펠레스타인의 80%를 차지했습니다. 이 전쟁으로 많은 팔레스타인 아랍인이 사망하고 100만 명에 달하는 난민이 발생하면서 유대인에 대한 아랍인의 증오와 복수심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이후 수에즈 전쟁, 6일 전쟁 등 4차에 걸쳐 중동전쟁이 발생했습니다. 1977년 미국 카터 대통령의 중재로 이스라엘 베긴 수상과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 사이에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점령지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게 반환하는 대신 자국 선박의 수에즈운하 이용권을 부여받았고, 점령지인 가자지구, 골란고원, 요르단강 서안, 동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계속 관리하기로 했습니다. 표면적으로 평화가 정착되었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조직적인 투쟁은 1964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결성되면서 본격화되었습니다. 가자지구의 피난민수용소에서 이스라엘의 지배에 대한 집단적인 저항인 이른바 인티파다가 전개되었습니다. 또한 1988년 11월 15일 이스라엘 점령지인 동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선언했습니다. 1993년과 1995년에 걸친 두 차례의 중동평화협정 체결로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팔레스타인 아랍인 자치가 실시되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출범이 합의 되었습니다. 1996년 1월 자치정부 구성을 위한 총선거가 실시되어, 아라파트가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치정부 출범 후에도 팔레스타인 최대 무장투쟁단체로 인티파다를 주도로 하는 하마스 등의 무장단체를 통한 테러행위가 계속되고, 이스라엘 내의 우파들 역시 강경한 정책을 견지하면서 이 지역의 평화는 좀처럼 오지 않았으며 결국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 - 하마스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고, 2025년 1월 15일에 휴전 합의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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