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냉전기의 국제안보
냉전은 2차 대전 후 처음으로 등장하여 대략 4반세기가 넘어 지속된 대치 상태를 일컫는 용어입니다. 냉전은 2차 대전 시기 추축국에 대항하여 함께 싸웠던 미국과 영국이 중부유럽 및 동아시아에서 이른바 '얄타 정신'의 구체적 실행을 놓고 대립하는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연합국의 지도자들이었던 루벨트, 처칠, 스탈린은 크림반도와 얄타에서 종전 후 독일을 비롯한 패전국들의 처리 문를 논의하였습니다. 그 결과 패전국이나 해방국에서 '모든 민주세력들을 폭넓게 대표하는 인사들에 의한 임시정부 조직을 구성할 것과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자유선거를 통해 인민의 의지에 책임지는 정부를 수립할 것'에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이 합의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소련과 미국, 국은 자국이 지지하는 세력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고, 특히 소련은 동유럽을 자국의 세력권으로 간주하여 이 지역에 친소정권의 수립을 추진하였습니다. 이에 대응해 미국과 영국도 타협보다는 대립노선을 채택함으로써 체제와 이념을 달리하는 두 진영 간 본격적인 대립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냉전은 두 개의 양립할 수 없는 세계관이 상호 경쟁적인 체제를 바탕으로 세기가 넘게 대립한 시기였습니다. 핵폭탄의 투입만이 엄청난 파괴력을 고려해 금기시되었을 뿐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모든 것이 총동원되었습니다. 인류를 절멸시키기에 충분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던 미국과 소련 양국은 세계 곳곳에서 대리전을 벌였습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이 발발했고, 쿠바에서의 미사일 위기로 양국은 일촉즉발의 핵전쟁을 벌일 뻔 하였습니다. 이러한 냉전시기에 안보에 대한 관심은 당연히 군사적 관점에서 정의된 국가안보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보는 학자들 간에 논란의 소지가 많은 개념이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안보가 기본적으로는 개인 및 집단의 핵심가치에 대한 위협이 없는 상태라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그렇지만 논의의 초점이 개인, 국가, 혹은 국제안보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견해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핵무기라는 인류전체를 멸시킬 수 있는 파괴력을 보유했던 두 진영이 대치했던 냉전 시기에 학자들과 정치가들의 주된 관심은 국가가 처한 군사적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군사력을 갖추는 것에 집중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와 이러한 냉정시기의 안보관이 안보에 대한 협소한 정의에 기반하는 것으로 인종중심적이며, 문화적으로 편향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러한 비판의 제기는 무엇보다 탈냉전이라는 국제정세의 변화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탈냉전은 1980년대 중반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개혁과 개방정책을 공식적 지도 이념으로 채택한 후 정치제도의 개혁과 탈국유화 및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추진하면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동유럽 사회주의 정권들이 붕괴하고 체제전환이 시작되었으며 동,서독이 통일을 달성하고, 거대한 소련제국은 해체되었습니다. 군사적으로 대치하던 한 축이 무너져내린 냉전체제의 붕괴는 많은 이로 하여금 전쟁없는 평화로운 세상의 도래를 기대하게 했습니다.
2. 탈냉전기의 국제안보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지만 평화는 오지 않았습니다. 발칸반도에서는 민족과 종교분쟁이 전쟁으로 연결되었고, 각종 테러행위가 증가했으며 나민과 불법노동인구의 이동과 마약과 연계된 국제범죄 역시 증가했습니다. 에너지 및 주요자원의 안정적인 수급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이 불붙었고,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전 지구적인 환경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등장했습니다. 당연히 기존의 국가안보 개념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양한 고려사항을 포함하는 안보개념이 주창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베리 부잔은 국가안보가 행위주체로서 국가가 가지는 취약성과 국가에 대한 다양한 위협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국가 안보는 다차원적이라면서 부잔은 군사적 측면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환경 등 제반 요소들을 포함하고 국제적 맥락에서 정의된 안보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이처럼 탈냉전시기에는 안보영역이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개념상의 복잡성과 모호성이 더욱 증대되었습니다. 특히 비군사적 안보영역의 중요성이 증대되면서 포괄적 안보 개념이 등장하기도 했습니자. 이러한 안보개념은 안보위협의 다양화에 따라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 군사적 위협은 물론이고 경제, 환경, 에너지 등 모든 분야에서 야기되는 위협에 대처하는 종합적인 안보개념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 국제안보의 주된 쟁점이 군사적인 것에서 비군사적인 것으로 옮겨가면서 그 우선순위도 바뀌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군사안보문제는 여전히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생존에 즉각이고 직접적인 위협이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안보를 군사영역에만 한정할 경우에도 안보공백의 위협을 초래합니다. 따라서 점차 복잡해지고 있는 세계에서 안보는 군사적 안보영역과 더불어 비군사적 안보영역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양자를 우선이나 차선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적으로 사고하고 대응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 해야합니다. 탈냉전기에 들어와 세계의 군사비 지출을 잠시 감소되는 경향을 보이다가 1998년 이후 다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연감에 따르면 2005년 세계 군사비 지출을 1조 달러를 넘어섰고, 미국이 반을 차지하여 세계 최대 군비지출국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미국은 명실공히 전 세계적인 군사비 지출의 증대를 선도하는 군사적 패권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차 대전 후 안보분야와 관련된 국제협력이 뚜렷하게 전개된 곳은 유럽과 대서양지역을 뽑을 수 있습니다. 유럽과 대서양지역은 북대서양조약기구, 서유럽동먕, 유럽안보협력기구 등 상이한 구성원과 협력관계를 가진 다수의 중첩적 기구를 토대로 한 안보협력체제를 구축해 왔습니다. 원래 유럽방위공동체를 중심으로 유럽적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범유럽주의 구상은 발의국인 프랑스의회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서유럽동맹으로 굴절되고, 대신 대서양주의적 관점의 북대서양조약기구가 독일군을 포함한 강력한 군사기구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는 회원국 일방에 대한 공격을 전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집단방위기구로 발전하게 됩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집단안보기구의 출범에 대항해 소련을 위시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은 바르샤바조약기구를 출범시킴으로써 동, 서 대립은 더욱 표면화되었습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는 1991년 대항조직이던 바르샤바조약기구가 해체되자 체제 변화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대두되었습니다. 그 결과 북대서양조약기구는 미국 주도로 지역분쟁에 대처하는 유럽안보기구로 자리매김한다는 신전략을 채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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