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의제 민주주의
오늘날 지배적 유형의 민주주의로 자리 잡은 것은 대의제 민주주의입니다. 근대 서유럽에서 확립된 대의제 민주주의는 밀이 지적한 대로 인민이 그들 자신에 의해 정기적으로 선출되는 대표자를 통해 궁극적으로 통제권을 행사하는 민주주의를 의미합니다. 영토가 확대되고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직접 민주주의제도를 운용하는 것이 점차 불가능해지면서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에게 의사결정의 권리를 양도, 위임하는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가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시민들은 자신의 대표를 통해 간접적으로 지배권을 행사하게 됩니다. 보통사람들이 자신의 삶, 더 나아가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의 삶에 대해 이성적인 결정을 내릴 능력이 있다는 확신이야말로 민주적 사고의 변함없는 토대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공공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모든 시민에게 부여하는 아테네의 고전적 관행이 가능했던 건 시민들이 모두 한곳에 모일 수 있을 만큼 도시국가의 규모가 비교적 작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국가들은 규모상 이런 관행의 실시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민주주의를 시민들이 자신들을 대신해서 법과 정책에 관한 결정을 내릴 정치적 대표를 선출하는 통치 체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체제는 직접민주주의라기보다는 대의민주주의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런 체제가 진정으로 민주적일지에 대해 의문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지배적 유형의 민주주의로 자리잡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대표 원리는 '어떻게 대표하는가?'와 '누구를 대표하는가?'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을 유발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정치질서에 결코 완전하고 충분하게 착근되지 못했습니다. 특히 대의제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의사가 왜곡되거나 자율성이 침해되고, 대표가 집단의 대표만을 대변할 뿐 소수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대표되지 못하며, 소수의 지배적인 권력집단이 형성될 수 있다는 한계를 표출했습니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인 정당정치도 정당구조가 점차 관료화되고 권위주의화하면서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배제하거나 왜곡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2. 참여 민주주의
대의제 민주주의가 각종 한계점을 드러내면서 그 대안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 참여 민주주의입니다. 물론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그 자체에 참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도덕적 차원에서 정치과정에의 참여를 자유와 자기개발을 위한 방도라고 본 밀처럼 근대의 여러 사상가들은 참여를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로 여겼습니다. 규칙적이고 공정한 선거를 통한 참여는 경쟁, 그리고 시민적, 정치적 권리의 보장과 더불어 오늘날에도 민주주의에 관한 최소한의 조건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의제 민주주의는 이러한 참여가 형식화되면서 다양한 시민들의 의사를 공적인 의사결정에 제대로 전달하고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참여 민주주의는 1960년대에 신좌파 운동의 슬로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들은 학교와 공장, 지역공동체, 그리고 국가행정에서 억압적 관료주의와 위계적 권위구조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직접 참여와 적극적인 개입을 주장했습니다. 신좌파의 특징 중의 하나는 민주주의적 과정을 확대하고 개인이 지닌 권리를 규제하기보다는 확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좌파 내에서는 엄곃남 민주주의 원칙들이 규범으로 지켜졌고, 아래로부터의 참여 민주주의라는 원칙이 커다란 집회에서부터 최소 규모의 행동위원회에 이르기까지 그 상호관계를 규정했습니다. 산업화와 도시화를 바탕으로 한 사회변동은 일상생활을 파편화 하면서 소외의식을 증대시켰고 정치적 참여를 주요한 주제로 떠오르게 하였습니다. 정부의 결정과정에 시민들의 실질적인 참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인식이 1960년대와 70년대에 광범위하게 확산되었고 이에 따라 서구의 각 국가들에서는 여러 형태의 시민 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참여 민주주의는 자신의 삶과 관련된 모든 영역에서 일반 시민들의 광범위한 직접 참여와 민주적 통제가 보장된 민주주의를 지칭합니다. 참여민주주의는 인간 발전은 장려하고 정치적 효용성을 고양하며 권력 중심으로부터의 소외감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참여 민주주의는 집단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정부의 일에 대해 보다 더 민감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적극적이면서도 통찰력 있는 시민의 형성에 도움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참여 민주주의는 불완전한 민주주의 현실에서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유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여의 수준을 넓히고 규모를 확대함으로써 시민들의 공적인 결정이 공익에 어긋나지 않게 감시하고 이를 통해 시민에 의한 자치라는 민주주의의 이상도 실현 가능하게 됩니다. 이 밖에도 참여 민주주의는 지배 권력으로 하여금 쌍방 통행적 장치를 통해 통치의 효율성을 높이고 민주적 전통성을 구축하게 합니다. 그러나 참여 민주주의 역시 한계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참여 민주주의는 지나치게 규범을 우선시하며, 과도하게 낙관적이고 비현실적인 인간상을 제시합니다. 시민들은 이기심을 최대한 추구하는 사람이고 특이한 조건에서만 공익지향적인 협력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입니다. 또한 토크빌이 지적한 문제인 광범위한 민주화가 소수 혹은 다수 전제의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점 역시 참여 민주주의의 한계로 지적됩니다. 이 밖에도 과다 동원으로 인한 불안정, 목표를 둘러싼 갈등, 정치적 결정의 질과 결과의 간과, 시민능력의 과대평가도 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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